레즈. 세가다운 감각으로 완성된 인터랙티브 뮤직 비디오
게임이라는 이름의 쾌락발생장치
'리듬 게임'이라는 장르에 있어서, 코나미의 「비트 매니아 시리즈(이하 비마니)」의 지평을 넘어선 게임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정정 하겠습니다. 「비마니」의 '상업적' 지평을 넘어선 게임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비마니」 (와 그 앒작들)의 과대한 성공으로 인해 리듬 게임이라는 장래성 높은 장르의 발전 가능성은 너무나 일찍 봉쇄당해 버렸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다른 리듬 게임조차도 전혀 주목받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비극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습니다.
리듬 게임에 있어, 음악은 채보에 종속되는 BGM에 불과할 뿐인걸까요? 정녕 자신이 자유롭게 음악을 연주하는, 혹은 '창조'하는 리듬 게임은 나올 수 없단 말인가요? 이러명 명제에 수많은 게임이 뛰어들었지만 역시 게임과 음악이라는 양자의 중립점을 찾지 못한 채 낙마하거나 사라져갔습니다. 그리고, 여기 세가가 만든 또 하나의 게임이 그 명제에 도전하기 위해 딴지를 걸었습니다. 바로 《레즈(Rez)》입니다.
리듬게임답게, 이 게임에는 스토리가 없습니다. 아니,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무의미합니다. 플레이어의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뭔가 시대착오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와이어프레임과 이팩트의 향연, 그리고 주기적으로 쿵쿵대는 진동과 번쩍이는 사이킥한 광원, 그리고 트랜스. 플레이어에게 주어진 것은 이것뿐입니다. 샷 버튼으로 락 온하고 쏜다. 그에 따라서 효과음이 울리고 음악의 리듬이 변화합니다. 플레이어도 그 속에 녹아들어가 도취하면 된다. 이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게임이라는 이름의 '쾌락발생장치'. 이 얼마나 간결한 구성인가요!
게임 혹은 릴랙스, 양자에 대한 딜레마
《레즈》의 기본은 트랜스 테크노라는 장르의 음악입니다. 흥분 상태의 인간의 심장 박동수를 기본으로 한다는 bpm 전후의 강한 베이스 비트와 규칙적인 하이햇, 듣는 사람을 무아지경 내지는 물아의 경지로 빠뜨려버리는 환각적인 음악, 이쯤 되맨 《레즈》라는 게임이 갖는 특성이 어떤 것인지는 얼추 파악하셨으리라.
화면은 단순하면서도 현란합니다. 레이저의 발사음과 적의 파괴음마저도 악기의 일부가 되는 절묘한 구성과, 익숙해지면 진동과 박자에 맞춰 적을 소멸시키면서 플레이어는 음악이 주는 도취감에 정신을 잃습니다. 음악이 게임의 전면부에 나서서 분위기를 주도한다는 점에서, 이 게임은 엄밀히 말해 슈팅 게임이라기보다는 '인터렉티브 뮤직 비디오'에 가깝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게임은 여타의 리듬 게임과는 퀘를 달리합니다. 연주에 오류에 대한 패널티의 부담없이, 순수하게 음악에 도취할 수 있는 새로운 룰을 확립하는 데 일정 부분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게임'과 '뮤직 비디오'의 사시에서 발생합니다. 모처럼 음악에 도취할 수 있는 훌륭한 마당을 다져 놓고서는, 《레즈》는 끝끝내 자신이 '게임'이란 걸 어거지로나마 증명하려 합니다. 나오는 적들은 플레이어를 향해 간혈적으로 공격을 가하고, 계속 공격을 맞다 보면 게임 오버까지 당하는데다가, 심지어 보스까지 있고 보스전가지 치러야 한다. 게다가 오버드라이브라는 이름의 전멸폭탄까지, 형식상으로 놓고 보자면 분명히 슈팅 게임입니다. 하지만 이 게임이 지향하는 바는 게임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딜레마는 발생합니다.
게임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긴장'입니다. 팽팽한 긴장감과 집중 속에 게임 속의 AI나 다른 플레이어와의 경쟁을 통해 승리를 쟁취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현대의 비디오 게임에서 끊임없이 추구되어 온 절대명제 중의 하나이며, 더욱 애석하게도 그 절대명제의 대표적인 대표적인 존재가 '슈팅 게임'입니다. 슈팅 게임이란 애시당초 '긴장'이 없으면 성립 할 수 없습니다. 반면 음악을 통한 도취는 그런 긴장이 일체 배제되어야만 성립이 가능합니다. 모든 마음의 빗장을 풀고 음악과 자기 자신의 파장을 일치시키지 않으면 않됩니다.
그런 서로 상반된 양자가 온전하게 공존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레즈》는 그러한 실험을 했지만, 결국 '게임의 논리'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적들이 탄을 가끔 생각난 듯 느릿학 소아 댄다지만, 그 탄을 격추시키기 위해 신경을 쏟는 순간 릴랙스는 무너집니다. 게임 오버를 당하는 순간 플레이어는 기분좋은 가상의 공간에서 강제로 쫓겨납니다. 보스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는 순간 '도취'는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진지 오래입니다. 이 모순되는 개념의 상충을 《레즈》는 결국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도취'라는 감각은 상대적입니다.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몰아의 경지에 빠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 문들 닫고 불을 끄고 바이브레이터를 겨드랑이에 끼운 다음 헤드폰을 낀 상태에서 게임을 해도 여간해서 도취되지 않는 사람도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레즈》의 한정판격인 '완전도취 셋트(일본에서만 발매된 한정판으로 바이브레이터등의 포함으로 더욱 도취가 가능하게 발매한 세트)는 모든 게이머가 《레즈》가 주는 '도취'의 묘미를 온전히 느낄 수는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합니다.
과연, '게임'이어만 했을까요.
결국, 《레즈》의 안에서 '도취'할 수 있으려면 게임의 모든 시스템을 익히고, 적의 위치를 암기하고, 타이밍을 체득하는 복잡한 '학습'이 뒤따라야 합니다. 이건 불합리합니다. 그런 도취 정도는 굳이 《레즈》가 아니어도, 하다못대 탄막이 화면을 뒤덮는 'E,S,P,RA,DE' 같은 게임을 수백 번 거듭하다보면 얼마든지 (때로는 더욱 강렬하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레즈》가 지향하는 바가 정녕 '쾌락발생장치'였다면, 과감하게 '게임'적 측면을 잘라내 버렸어야 했습니다.
《레즈》는 분명 그 자체로도 높게 평가받을 수 있는 훌륭한 게임이긴 하지만, 동시에 그 자신의 사상적 한계점까지 명확하게 드러나버리고만, 미완의 실험작입니다. 차라리 '게임'임을 아ㅖ 포기하고 개발되었더라면 어 낳았을지도 몰랐다는 것은 비단 저만의 생각일까요.